· 고대 중국 초나라 ‘항우’의 애첩 ‘우미인’은 ‘항우’가 ‘유방’ 군대에 포위되어 사면초가에 이르자, ‘항우’와의 마지막 술자리에서 ‘항우’가 지은 시에 맞춰서 노래를 부른 후 스스로 목숨을 끊었는데, 그 후 그녀의 무덤 위에 빨갛고 예쁜 꽃이 활짝 피어났고 이 꽃을 ‘우미인초’라 불렀다는데, 바로 이 꽃이 오늘 날 꽃(개)양귀비라고 합니다
· 당나라 현종 임금이 자기 19번째 아들(왕자)의 며느리로 간택되었던 여인(楊鈺環)의 빼어난 미모에 반해 후궁으로 받아들여 ‘귀비(貴妃)’라는 직위를 내림으로써 ‘양(楊)’씨 성을 가진 ‘귀비(貴妃)’라는 뜻의 양귀비 (楊貴妃)가 되었다 하고, 이로부터 미인을 ‘양귀비’라 부르게 되었으며 지금의 양귀비꽃도 미인처럼 예쁜 꽃이라 ‘양귀비’라 부르게 된 듯합니다.
· 한편, 당 현종은 이 양귀비의 미모는 물론 비파를 연주하며 춤을 추고 글을 쓰는 그녀의 재능에 홀딱 빠져, 나라 살림을 소홀히 하게 되면서 결국 ‘안녹산의 난’이 일어나고 나라가 망하는 지경에 이르렀다고 합니다.
* 이 사례를 지칭, ‘경국지색(傾國之色)’ 즉, ‘나라를 기울어지고 망치게 하는 미모’라는 고사성어까지 만들어져 쓰여져 내려오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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